해남 공룡박물관

              해남 우항리의 공룡화석지를 널리 알리고, 자연사교육장 겸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한 공룡박물관으로, 2007년 4월 27일 개관하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룡과 익룡, 새발자국 화석이 한 층준에서 발견된 해남 우항리 공룡화석지는 천연기념물 제394호(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화석산지)로 지정되어 있다.
              우항리공룡박물관은 건축총면적 약 7,930m²의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이다. 지상 1층은 우항리실과 영상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항리 공룡발자국 화석의 발굴과정 및 내용·학술적 의미· 우항리의 백악기 생태환경 등에 대한 전시를 한다. 주요전시물은 대형초식공룡 발자국층, 흔적화석, 익룡을 비롯한 여러 공룡의 다리 골격과 발자국형태 등이다.
              지하 1층은 공룡과학실·공룡실·중생대재현실·해양파충류실·익룡실·새의 출현실·거대공룡실·지구과학실로 구성된다.
              전시관에는 알로사우루스 진품화석을 비롯해 조바리아·티아노사우루스 스탄·초식공룡 알둥지 등 희귀 전시물과 트라케라톱스·티라노사우루스 렉스 등의 골격과 표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옥외에도 3동(익룡조류관·조각류공룡관·대형공룡관)의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해남공룡박물관 홈페이지]

               

               

              땅끝 해양 자연사 박물관

              땅끝 해양자연사 박물관은 세계 각국에서 직접 수집한 희귀해양생물을 수집하여 전문가의 고증을 얻어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에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바다의 신비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해양과 자연을 축소하여 세계적인 패류와 산호류, 어류, 포유류, 갑각류, 화석류, 파충류, 육지 곤충에 이르기까지 25,000여점을 한곳에 전시해 명실공히 남도 최고의 종류를 갖춘 땅끝 해양자연사 박물관입니다.

              http://www.tmnhm.com/

               

               

              두륜산 (케이블카)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남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03m이다. 남서쪽의 대둔산(大芚山:672m)과는 자매봉을 이룬다. 소백산맥의 남단인 해남반도에 우뚝 솟아 있어, 정상에 서면 멀리 완도와 진도를 비롯하여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바라다 보인다. 특히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숲과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 2㎞에 이르는 계곡이 장관이다. 또 가을이면 두륜봉과 가련봉 사이에 넓은 억새밭이 펼쳐진다. 고찰로는 신라 진흥왕이 어머니 소지부인(昭只夫人)을 위하여 544년 아도(阿道)로 하여금 창건하게 했다는 대흥사와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이 40년 동안 수도 생활을 했던 일지암(一枝庵)이 있다. 이 때문에 이 일대는 예로부터 한국 고유의 차와 다도로 널리 알려졌고 유자 산지로도 유명하다.
              대흥사에는 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北彌勒庵磨崖如來坐像:보물 48호), 북미륵암삼층석탑(보물 301), 응진전전삼층석탑(應眞殿前三層石塔:보물 320) 등 문화유적이 많다.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두륜산케이블카는 선로 길이만 1.6Km로 왕복식 케이블카 중에서는 국내에서 최장거리로 해발 586m까지 초속 3.6m의 속도로 대략 8분이 소요된다. 경관이 아름다운 전망대와 산책로가 있다.

              [케이블카 이용요금 참고]

               

               

               

              대흥사

              해남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두륜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대둔사(대흥사)는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있는 두륜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대흥사는 514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그 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선조 37년(1604)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스님에게"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렵혀지지 않을 곳" 이라며 해남 대둔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 절은 사세가 번창하고 그의 법을 받아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일제때는 대흥사라 고쳐 불리다가 1993년 대둔사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땅끝전망대

              한반도를 휘돌아 온 기세가 마침내 정점(頂点)을 이루는 곳. 땅끝!
              천지(天池)에서부터 치달려온 백두대간(白頭大竿)의 숨찬 호흡을 길게 내쉬며 발을 멈추고 화룡점정(畵龍点晴)하듯 마지막 획을 찍는다.
              더 이상 발디딜 곳을 찾을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만감(萬感)이 교차하는 이곳, 하지만 땅끝은 단순한 끝이라는 의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곳은 바로 대륙문화(大陸文化)가 유입된 길목이다. 그 좋은 예가 불교(佛敎)의 남방유입설(南方流入說)인데, 이는 지금까지 중국을 경유해 고구려, 백제로 전파됐다는 통설과는 정반대의 것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또한 땅끝권은 한반도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장엄한 일출과 아름다운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송호해수욕장과 사구미 해수욕장 및 드라마 허준촬영지로도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연동리 비자나무 숲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 제241호. 면적 99,000㎡. 해남윤씨(海南尹氏)의 중시조효정(孝貞)의 사당 뒤에 있다.
              나무의 나이가 530년 가량 된 숲으로 추정되는데 가장 큰 것은 높이 20m 내외에 가슴높이의 줄기지름 1m 정도, 수관(樹冠 : 나무의 줄기 위에 있어 많은 가지가 달려 있는 부분)의 지름 15m 정도 된다.
              숲 바로 밑에는 곰솔이 우거진 가운데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 있다. 곰솔 중 가장 큰 것은 높이 25m에 가슴높이지름 1m 내외이다.
              숲 밑에는 사스레피나무·참식나무·마삭덩굴·개비자나무·남오미자·송악·모새나무·보리밥나무·자금우·동백나무 등의 상록수종과 더불어 맥문동·실맥문동·춘란 등이 여기 저기에서 자라고 있다. 산록에는 효정의 아들 4형제가 각각 한 그루씩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뒷산의 비자나무숲을 잘 보호하여 왔는데, 이것은 시조의 유언을 잘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윤씨의 시조는 뒷산의 바위가 노출되면 이 마을이 가난해진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참고문헌≫ 文化財大觀-天然記念物編-(文化財管理局, 1993)

               

               

              고산 윤선도 유적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한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조선조의 문신,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1587~1671)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은 광해 4년(1612)에 진사 되고, 4년후 성균관 유생으로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 6년(1628)에 별시문과의 초시에 장원한 후 봉림과 인평을 모시는 왕자사부가 되고 한성서윤과 예조정랑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여 자연에 들어 원림을 경영하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등 불후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 및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그 사이 효종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 12년에 8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였다. 숙종 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헌(忠憲)이라 하였다. 이곳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 종가의 고택인 녹우당(사적 제167호), 그리고 그의 선조 어초은사당과 고산사당 및 추원당과 유물관이 있다.